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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달력의 나이와 생기의 나이

아내 없이 홀로 생활하고 있는 시간이 오늘로 열흘이 넘었다. 젊어서 해외 출장 등 특별한 경우 외는 거의 없었던 일이라 불편하고 생경하다. 물론 아이들이 어릴 때 한국을 다녀오는 등의 경우는 예외로 하고 말이다.   앞으로 이 생활이 얼마나 지속할지는 순전히 장모님의 건강에 달려 있다. 평소 운동도 좋아하시고 밝게 사셔서 큰 병 없이 100세는 거뜬히 넘기실 줄 알았다. 그런데 90 고개를 넘기면서 잘 버티던 골격들이 조금씩 무너져내린다 싶더니 달포 전 화장실 바닥에 넘어지시면서 사달이 났다. 진단결과 등뼈에 금(Fracture)이 발견되어 수술 대신 재활원에서 4주 동안 약물과 물리치료를 받으시다 열흘 전 퇴원하셨다. 그때도 아내 병시중은있었지만 그래도 밤은 집에서 지냈다.   장모님의 건강악화는 장차 우리 앞날의 예시라는 생각이다. 매일 같이 일어나 걷고 뛰었지만 한 번도 이것이 멈출 때가 온다는 생각을 한 적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멈춤으로 인해 오늘도 어릴 때로 돌아가 앉고 서며 걷는 훈련에 진땀을 쏟는 분들이 많음을 장모님이 계셨던 재활원에서 목격하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우리가 날마다 잠에서 깨어 자기 힘으로 먹고 마시며 생각하고 배설함이 은혜이자 축복이다.   성경에 아골골짜기뼈 이야기가 있다. 흩어져 있던 마른 뼈들이 하나님이 명하니 각기 제자리를 찾아 붙고 힘줄이 생기고 살과 가죽으로 덮이는 장면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생명력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생기를 명하자 그것들이 살았고 일어나 서서 뛰며 군대가 되는 모습을 통해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다.   또 창세기에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된 지라 라는 말이 있다. 정리하면 생기가 없는 인생은 흙이자 마른 뼈의 조합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생기가 돌면 비로소 생령의 사람이 되어 숨 쉬고 앉고 일어서 활동하며 사고할 수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나이 들어 늙고 병들어 힘을 잃고 죽음에 이름은 가득 찼던생기가 하나둘 소진되어 감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퇴원 후 보험회사 사람이 나와 어머니의 건강목표가 어디까지냐고 질문할 때 아내는 울컥했다. 침대에서 도움 없이 일어나 앉고 혼자 힘으로 화장실 출입이라도 하는 것조차 미련한 딸의 분에 넘치는 욕심 같아 안타깝고 슬펐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간에게는 달력 나이와 생기 나이가 함께 존재하는 것 같다. 달력 나이란 성경에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정해져 있다 하겠으나 생기 나이는 일률적으로 규정할 방법은 없다. 굳이 생각해보면 가장 활기 넘쳤던 청년의 시대에 지수 100에 이르고 이후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 않을까. 그러다 50 이하로 떨어지고 그 후 점점 나빠져 10 이하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다 제로가 되어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수고와 슬픔만 남긴 채 날아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갈 인생! 이제부터라도 지수 ‘0’의 그날을 예비하며 육신을 지탱하는 뼈와 근육을 튼튼히 함은 물론 생명유지 수단이라는 심혈관계, 신경계, 골근계의 건강을 잘 지키다 하나님 부르실 그 날에 밝고 순한 그리고 준비된 마음으로 예비된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삶이 최고의 복된 인생이 아닐까?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나이 달력 달력 나이 생기 나이 화장실 바닥

2023-09-15

[수필] 49일간의 동거

“딸한테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치밀었지만   참는 게 후회 할 일이   안 생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편해졌다.”     조용하던 집이 꽉 찼다. 결혼한 딸이 20년 만에 가족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서 한 달을 머물 예정으로 이사를 왔다. 집이 여기저기 물이 새고 부서져 수리를 한단다. 코로나로 집 고치는 사람이 부족한 이때 한 달 만에 고칠 수 있다는 말에 믿음이 안 갔다. 모처럼의 딸 식구랑 살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고 한편 불안하기도 했다.     둘만 살다가 여섯 명이 되니 부엌에 수저통부터 바뀌었다. 열다섯과 열두 살의 손녀들은 젓가락보다는 포크가 편했다. 음식도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 오렌지주스나 향기 좋은 커피가 그들의 조식이었다. 식빵을 아침마다 여덟 쪽을 먹으니 식빵 한 봉지가 이틀이면 없어졌다. 식빵 값이 이렇게 비싼지 처음 알았다.       원래는 딸 식구가 다섯 명인데 큰 손자가 대학 기숙사에 있어서 그나마 네 명으로 줄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도 봄 방학이 되어서 늦게 합류하니 일곱 명의 식구가 한 집에서 1주일 복작대면서 살았다. 손자는 침대가 없어 소파에서 자야 했다. 1주일만 지내다 가서 “휴” 하고 한 숨 돌렸다. 화장실 청소는 하루에 한 번씩 꿇어 앉아서 손녀딸들의 머리카락을 줍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윤기 나는 긴 머리카락은 주어도 주어도 끝나질 않는다. 예쁘고 반짝거리는 머리를 유지하려면 매일 샴푸하고 잘 빗어 내리고 이것저것 영양제를 뿌리고 해야 한다. 그들이 쓰는 화장실은 어느새 젊은이들의 소유물 장소로 바뀌었다. 샴푸와 린스만 있던 옛날의 내 화장실이 더 이상 아니었다.     빨래는 하루에 한 번씩 세탁기를 돌렸다. 커다란 목욕타월은 한 번 쓰고 나면 빨래 통으로 들어갔다. 마치 호텔에 와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요즘은 호텔도 코로나로 일주일 내내 타월을 바꾸어 주지 않던데. 지난번 호텔에 갔을 때 룸서비스가 없다고 프런트 데스크에 쓰여 있었다.     손녀들은 전기 불을 켜 놓고 이방 저방 다닌다. 일일이 지적도 못 하겠고 따라다니며 불 끄는 일도 지쳐서 포기했다. 어느 날은 새벽 한 시에 일어나보니 아이들 방과 복도가 대낮처럼 밝다. 딸한테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치밀었지만 참는 게 후회 할 일이 안 생길 거라 마음먹으니 편해졌다.     나도 어릴 적 엄마가 전기 불 끄라고 소리 지르던 생각이 나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전기 사정이 나빴던 한국 60년대 나는 밤에 라디오를 틀어 놓고 자기 일쑤였다. 지금은 반세기가 지났고 여긴 미국 아닌가. 어릴 적 습관은 여든 살 간다던 말이 현실로 나타났다. 내일 모레면 여든이 가까운데 아직도 어제 일 같이 생생하게 불 아끼고 물 아끼던 추억이 떠오른다.     친구 모임에서 딸과 살면서 느낀 얘기를 하니 모두 이구동성이다. 딸과 세대차이도 많은데 손녀들까지 합치면 입 다물고 참는 게 제일 약이라고 한다. 같이 살기로 한 마당에 뒷소리하면 힘들게 참아온 보람이 다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느 수필집에서 읽었던 말대로 가까이 살면서 상처의 골이 깊어 질까봐 제일 두려웠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모처럼 방학을 맞아 찾아온 손자가 아침 10시쯤 일어나서 식사를 챙겨주니 맛있게 먹고 앉아서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때는 지금이다 싶어 차고 문이 오래되어 삐거덕 하는 소리를 내니 차고문과 연결된 기계에 기름을 발라줄 수 있냐고 물었다. 손자는 고개만 끄덕거린다. 눈을 안 맞추고 대답하는 게 요즘 아이들의 특징이다. 1년 동안 남편한테 졸랐으나 기름만 사다 놓고 뿌릴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몇 분 후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자리에 있어야 할 손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불러도 대답이 없더니 아래층 화장실에서 나온다. “할머니 화장실 물 내리는 도구가 어디 있어요?” 한다. “그건 왜?” 물으니 자기가 변을 봤는데 변기가 넘쳐흘렀다고 했다. 지금 화장실 바닥이 물바다가 되었으니 오히려 자기를 도와 달라고 한다. 큰 타월로 바닥을 닦고 법석을 떠는 동안 할아버지는 사닥다리를 놓고 차고 문에 기름을 다 칠했다. 그날 있었던 사건을 딸한테 얘기했다. 딸은 화장실 가는 걸 어떻게 늦출 수 있었겠느냐 하며 싫은 소리를 한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일하는 나의 꿈은 예상치 못한 화장실 사건으로 허망하게 끝났다.     그때부터 딸과 나는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법정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딸과 사위는 저녁밥을 해 놓으면 늦게 올 때가 많아 그 식은 밥은 다음날 남편과 내 차지였다. 몇 주 지나고 나서 애들과 먹는 저녁은 아예 포기했다. 여고생과 여중생인 두 손녀는 농구 선수로 주중이나 주말에 저녁 9시가 되어서 집에 들어오기 다반사였다.     손녀들이 오면 주말에 같이 아침 먹고 쇼핑하려고 했던 내 계획은 산산이 부서졌다. 저녁에 바다 걷고 옛날 얘기도 들려주고 사진 찍고 하려고 했던 일도 한낮 물거품이었다. 어찌나 바쁜지 그들한테 할머니를 위한 시간은 없었다. 저렇게 사는 게 그들의 살아가는 과정인 걸 어쩌겠나. 더 나은 내일과 밝은 세상을 만들려고 열심히 뛰는데 내가 할 일은 응원하는 것 뿐이지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딸은 그동안 한 죄수의 무죄를 증명하느냐고 바쁘게 지낸 것을 나중에 알았다. 21살에 살인자로 10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청년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으로 재심을 허락 받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느냐고 정신없이 바빴단다. 열심히 증명한 결과 살인자 누명을 썼던 죄수는 무죄로 풀려나서 모두가 행복한 재판으로 끝이 났다. 그까짓 머리카락 줍고 식빵 사는 일이 무슨 큰일이라고 난 불평을 했을까 갑자기 숙연해진다.   동거 49일 만에 네명의 딸 가족이 떠난 자리엔 주어 담을 윤기 나는 머리카락도, 쫓아 다니며 끌 불도 없는 방이 캄캄하다. 수북이 담은 토스트도 없다. 향기 좋은 이탈리아제 커피향이 새삼 그립다.     김규련 / 수필가수필 동거 할머니 화장실 아래층 화장실 화장실 바닥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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